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아랍권 관계 (문단 편집) === 갈등의 배경 2 : 팔레스타인의 아랍 민족주의 === 구약 시대 유다이아 주민들이 사용하던 [[히브리어]]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에 속한다. 히브리어는 [[바빌론 유수]] 그리고 뒤이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에서 유대인들을 해방한 것을 계기로 사용 규모가 점차 축소되기 시작하는데, 유다이아 주민 사이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공용어였던 [[아람어]][* 역시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언어이다.] 사용이 유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의 멸망 이후 히브리어의 몰락은 오히려 더 가속화되었다. [[헬레니즘]] 시대 유다이아 주민 상당수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군대에 납치되어 [[알렉산드리아]]로 강제이주되는데, 이렇게 알렉산드리아로 이주된 유대인들 중 상당수는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고 그리스어를 모어로 사용되어 되었다. 구약을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로 옮긴 이른바 [[70인역]]의 번역 배경 역시 유대인들 중 히브리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인구가 늘어난 것이 계기였다. [[시오니즘]] 운동에는 고대 당시 이미 사어가 된 [[히브리어]] 부흥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스라엘 측 언어 학자들은 이 히브리어를 복원하는데 [[아랍어]]의 어휘와 문법 등을 상당부분 차용하기에 이른다. 아랍어는 히브리어를 복원하는데 결정적인 참고 대상이었다. 히브리어와 고대 [[페니키아]]어, [[아람어]], [[아랍어]]는 모두 [[아프리카아시아어족]]에 속하며, 아랍인과 유대인은 문화의 상당 부분을 공유하기 때문에 당연한 선택일 수 밖에 없었다. 이렇듯 여러가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현대 이스라엘의 민족 정체성과 팔레스타인인은 서로를 배타적으로 인식하는데, 그 원인에는 유대인의 선민 사상, 아랍 민족주의, 이슬람주의를 들 수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아랍권 사이의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과 아랍 민족주의 상관 관계 그리고 이스라엘 측의 팔레스타인 해석을 비교대조해 볼 필요가 있다. 서기 7세기 [[정통 칼리파 시대]] 당시 [[이슬람 제국]]이 [[예루살렘]]을 포함한 오늘날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일대를 정복하였다. 정통 칼리파 시대 당시에는 이슬람교 신학이 아직 체계적으로 확립되지 않았던 시대로 여타 [[아브라함 계통 종교]]와 공존, 화합이 용인되던 시대였고, 중동의 기독교인들이나 유대인들은 이들을 자신들을 괴롭히던 [[정교회]]보다 나은 다른 이단 종파 정도로 여기며. 아랍 무슬림들의 팔레스티나 정복을 환영하였다. 실제로 이슬람 제국의 종교 정책은 동로마 제국보다는 훨씬 관대한 편이기도 했는데,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는 모두 [[아브라함 계통 종교]]로 교리 상당부분을 공유하며, 쿠란에는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이 자주 언급되지만 이들의 행적은 성경에서처럼 구체적으로 시간 순으로 언급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외려 쿠란에서는 이른바 "성서의 백성"이라 불리는 기독교인들과 유대교인들과의 융화 관련한 내용도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이슬람 제국은 기독교인과 유대인, [[만다야교]] 신도들을 소수자로서 용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슬람 제국의 종교적 관용은 중세 기준에서의 관용이었다. 이슬람 제국의 기반이 점차 안정화되면서 무슬림들을 우대하고 비무슬림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방식이 체계화되면서 아랍인과 비아랍인, 무슬림과 비무슬림 사이에는 서로 불평등한 관계의 서열이 확립되었다. 아랍 우월주의 성향이 강했던 [[우마이야 왕조|우마이야 칼리프조]] 시대 들어서는 관청에서 [[아람어]]와 그리스어 사용이 금지되고 대신 아랍어만 사용되도록 하는 법이 제정되었다. [[아바스 왕조|압바스 칼리프조]] 시대 들어서 팔레스타인 일대의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 상당수는 [[지즈야]] 부담으로 대거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특히 농촌 지역에서 두드러졌다. 지즈야는 무조건 화폐로 내야 했는데 이는 농촌에서 자급자족하는 농민들 입장에서, 외부에서 화페를 "구입"해서 지불해야 하는 이중의 수고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아람어 대신 아랍어를 사용하면서 완전히 아랍화되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팔레스타인인]]들은 고대 이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땅에 거주하던, 시대가 지나며 기독교 및 이슬람교로 개종한 유대인, [[사마리아인]]들의 후손이라 볼 수 있다.[* 오늘날 [[사마리아인]]과 가장 '''혈연'''적으로 가까운 민족집단으로는 팔레스타인인을 들 수 있다.][* 의외로 놓치지 쉬운 사실이지만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 무슬림#s-4.1|이스라엘 베두인]]은 서로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이 없다.''' 이스라엘 베두인들의 경우 이스라엘군에 적극적으로 복무하는데, 전통적으로 네게브 사막을 중심으로 거주해온 이들은 원래 농촌에서 농경 혹은 도시에서 상공업에 종사하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과 전통적으로 상당히 적대적인 관계였다. 이스라엘 베두인들은 아랍어 방언부터 다르다.]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고대 이스라엘인의 직계 후손이자, 무슬림이라는 자부심과 정체성을 두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전통적인 아랍 무슬림들의 가치관 속에서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은 2등 신민이었다. [[하심 가문]]에서 시오니즘을 지지하고 유대인들의 이민을 장려한 것 역시, 새로 이주해온 유대인들이 딤미[* 무슬림 국가에서 [[지즈야]]를 납부하는 비무슬림 피보호 신민]로서 복종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팔레스타인이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이전 팔레스타인인 아랍인들의 공적 1호는 [[맥마흔 선언]]에서 보듯 아랍인들을 탄압하던 [[오스만 제국]]의 튀르키예인들이었지, 유대인들이 아니었다. 당시 아랍인들은 유대인들은 전쟁이나 싸움을 전혀 못하는 유약한 샌님들이라는 식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 대량이민이 위협이 될 것이라는 판단까지는 하지 못했다. 이러한 판단 미스는 시오니스트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이스라엘 건국 직전까지 좌파 시오니스트들 상당수가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에서 함께 평등하게 하하호호 어울려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오늘날 기준으로는 상상도 하기 힘든 낙관 속에 빠져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